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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물류업체 사장이 말하는 안전운임제…“기사들 살아야 물류가 산다”

물류업체 사장이 말하는 안전운임제…“기사들 살아야 물류가 산다”

 

입력 : 2022.11.29 16:26 수정 : 2022.11.29 16:30
조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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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총파엽 엿새째인 2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성동훈 기자

“기사들이 화물차 철판을 뜯어먹고 살았다.”

부산의 물류회사 사장 A씨(70대)는 ‘안전운임제’ 도입 전 컨테이너 화물기사들의 삶을 이렇게 기억했다. 운송사업자인 그는 15년간 물류회사를 운영하며 화물기사들과 직접 운송계약을 맺고 운임을 지급해 왔다. 이전에도 수십 년 동안 물류업계에 종사했다. 화물업계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지난 2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안전운임제 전에는)화물기사들이 수입은 턱없이 부족한데 화물차는 매일 낡으면서 감가상각됐다. 운송사 사장들이 기사들을 보고 ‘차량 철판을 뜯어먹고 산다’고 할 정도였다”며 “물류업계 전체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안전운임제는 꼭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물류현장은 갑과 을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있어요. 그나마 안전운임제가 그 균형을 조금이라도 잡아줬는데···안전운임제가 사라지면 정말 다 죽습니다.” 30년 차 베테랑 물류회사 사장 B씨(70대)도 비슷한 생각이다. 그는 “화주들은 안전운임제 운임이 지나치게 높다고 하는데, 10년 동안 (최저가로)깎이고 눌려 온 운임을 정상화한 게 안전운임제”라고 했다.

화물기사의 ‘최저임금’ 격인 안전운임제 지속·확대 추진을 요구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총파업이 29일로 6일 차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두고 ‘강성 귀족노조의 생떼로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며 강경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물류현장에서 기사들과 계약을 맺고 운임을 주는 운송사 사장들조차 안전운임제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2021년 국토교통부의 용역을 받아 한국교통연구원이 수행한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및 활성화 방안 연구’를 보면, 시멘트 운송사 80%가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또는 일몰제 추가 연장’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컨테이너 운송사도 55%가 동의했다. 경향신문은 부산항을 중심으로 물류업에 종사하고 있는 운송사업자 2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화주들과의 계약에서 입을 수 있는 불이익을 피하고자 운송사업자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다.

“안전운임제 없으면 허브항이고 뭐고 끝장”

인터뷰에 응한 운송사업자들은 화물파업으로 당장은 피해를 입고 있지만, 안전운임제가 있어야 물류 현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고 입을 모았다. 적정 운임 보장이 물류업계 전체가 상생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화물시장은 ‘화주-운송사-화물기사’의 수직구조로 이뤄진다. 항만을 예로 들면, ‘화물의 주인’인 화주는 화물이 내린 항만 인근의 운송사와 운송 계약을 맺고 ‘운송운임’을 지급한다. 운송사는 이렇게 받은 화물을 내륙의 다른 지역으로 운송하기 위해 화물차를 소유한 화물기사와 계약을 맺고 ‘위탁운임’을 낸다. 이 과정에서 화물 고유의 ‘데이터’를 관리하며 점과 점을 매개해주는 게 운송사의 역할이다.

지난 27일 서울의 한 시멘트공장 앞에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들의 시멘트 수송 차량들이 서 있다. 강윤중 기자

화주-운송사 계약은 입찰로 이뤄진다. 운송사들은 계약을 따내기 위해 낮은 단가를 적어 낼 수밖에 없다. 그만큼 화물기사들에게 돌아가는 몫도 줄어든다. 특히 최근 10여년 동안 세계 경제의 변화, 산업의 고도화·전문화 등으로 컨테이너 물량이 줄면서 이 ‘최저가 경쟁’이 더 극심해졌다. B씨는 “이 바닥이 10년 동안 해마다 운임이 깎였다. 내가 10년 전에 하역비를 톤(t)당 약 12만원 받았는데, 최저 6만원까지 내려갔었다. 운송사들이 못 받으니까 밑에 적게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운송사들은 어떻게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덤핑(원가 이하 판매)을 하고, 운임이 떨어지면서 화물기사들도 피해를 보았다. 1주일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4탕 뛰어도 됐던 게 5~6탕을 뛰어도 먹고살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2011년 6월 국토교통부가 정한 컨테이너 운송료가 2016년~2017년쯤엔 절반 가까이 떨어진 적도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치킨 게임’의 해답으로 2019년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다. 컨테이너와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에 한해 3년 시한 일몰제로 적용됐지만, 조금이라도 물류업계의 숨통을 터 주는 조치였다고 운송사업자들은 말했다. A씨는 “일반 상거래에 정부가 개입해 이윤을 책정해주는 건 사실 자유시장경제에 어긋나는데도, 상황이 워낙 심각해서 도입된 것”이라며 “시장 자율로 가격이 결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앞서 말한)기울어진 운동장의 고착화를 간과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 24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에 운행을 멈춘 화물트럭이 컨테이너 사이에 주차돼 있다. 김창길 기자

운송사업자들은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변화를 확실히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A씨는 “소득이 올라갔으니 기사들도 여유가 생겼다. 이전에는 과속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완화되고 있다”며 “안전사고 개선도 피부로 느낀다. 안전운임제 도입 이전에는 우리 회사 기사들이 사고를 더러 내곤 했는데, 도입 이후 한 건도 사고가 없다”고 했다. 그는 “국토부는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 특수견인차량 사고가 크게 줄지 않았다고 하지만, 안전운임제 미적용인 철강 등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다. 컨테이너만 따로 통계를 내보면 다를 것”이라고 했다. B씨는 “부산의 경우 새로 생긴 신항으로 외국계 자본이 들어왔는데 정부가 규제를 안 하며 균형이 무너졌다. 안전운임제가 그나마 균형을 잡아줬다”며 “안전운임제가 없었다면 허브(HUB)항이고 뭐고 완전히 끝났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관료라면 안전운임 확대한다”

운송사업자들은 안전운임제 도입 이후에도 현장이 완전히 ‘정상화’되지는 못했다고 본다. 지난 10여년 동안 운임이 지나치게 많이 깎여서 아직도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운송사는 화주에게서 받은 운송운임에서 화물기사에게 주는 위탁운임을 뺀 몫을 가져간다. 현재는 이 ‘차액’이 실제 운송사의 유지비용보다 적다는 게 운송사업주들의 주장이다. 그 결과 운송사들이 ‘살기 위해’ 여전히 화물기사들의 몫을 조금씩 줄이고 있다고 한다.

전반적인 운임이 낮은 탓에 현장에서는 을(운송사)과 을(화물기사)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손해를 조금씩 감내하고 있다. 운송사는 어쩔 수 없이 화물기사들에게 위탁운임을 주면서도 ‘배차대행수수료’ 명목으로 조금씩 돈을 받고, 기사들도 운송사가 망하면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워 이를 감수해준다고 A씨는 설명했다. 물론 이는 일종의 탈법이라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화물기사들이 이를 신고하면 운송사는 건당 5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낮은 운임이 ‘을-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은 최근 운송운임마저 삭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화물연대의 비판을 받고 해당 조항을 철회했다.

2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 인근 화물연대 서울경기지역본부에서 열린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여전히 피해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운임제 ‘축소’는 물류업계 전체가 무너지는 길이라고 운송사업자들은 말했다. ‘환적(부두에서 부두로 화물을 옮기는 것)’ 화물도 다루는 B씨는 안전운임제의 유무에 따라 현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뚜렷하게 경험했다. 환적은 원래 안전운임제가 적용됐다가 화주들의 소송으로 1년 만에 폐지됐다. 안전운임제 적용 첫 해엔 낮은 환적운임에 떠난 기사들도 다시 돌아오고 차량도 바꿨는데, 적용이 폐지되면서 500여명이던 환적 기사가 250여명으로 줄었다고 했다.

B씨는 “어쩔 수 없이, 내륙으로 가는 기사가 쉬어야 할 때 부탁하고 있다. 기사들은 자는 시간을 깎아가며 환적을 해야 하니 거부하는데, 운송사들도 살아야 하니 환적을 해 주는 기사에게만 물량을 주는 일도 있다”며 “서로 사정을 다 아는데도 맨날 싸우며 갈등이 커진다. 이런 손실을 나라가 아는지 모르겠다. 내가 관료라면 안전운임제 품목을 확대했을 것”이라고 했다.

 
 

A씨는 “10여년 동안 비정상적으로 낮게 책정된 운임을 다시 원가 반영하는 요율로 돌리는 게 안전운임제의 취지”라며 “한번에 많이 올라간다고 보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화주들도 파트너십을 갖고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