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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회

시동 걸린 검찰 해체, 열쇠는 디테일에

시동 걸린 검찰 해체, 열쇠는 디테일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다시 검찰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과거의 실패에 영향을 받아 강도가 더 세졌다. 방향은 명확하다. 검찰을 더 이상 ‘고쳐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상현 기자다른기사 보기

  • 입력 2025.07.0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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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씨가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6월3일 오전 서울 서초구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재수사하는 서울고등검찰청 수사팀이 김씨 육성이 담긴 전화 통화 녹음파일 수백 개를 압수수색을 통해 새롭게 확보했다. 2009년부터 3년 동안 김건희씨와 증권사 미래에셋 직원 사이 이뤄진 녹음에는 ‘계좌 관리자 측에 수익의 40%를 줘야 한다’ ‘계좌 관리자 측이 수익금 배분을 과도하게 요구한다’는 취지의 김씨 육성이 담겼다. 녹음파일에 등장하는 증권사 직원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김씨가 주식 매매 세력에 가담했다고 당시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주가조작 공범인 2차 작전 주포 김 아무개씨도 최근 재조사 과정에서 김건희씨 명의 계좌 거래에 제3자가 개입했다는 데 무게를 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서울고검 재수사팀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인한 IP 추적 결과 김건희씨 명의 거래가 주가조작을 주도한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사무실에서 이뤄진 사실도 확인됐다. 이 같은 새로운 물증과 정황 증거들은 김건희씨 사건의 판도를 바꾼다. 김씨가 주가조작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주가조작 ‘방조’ 혐의를 받는 김씨에게 ‘공범’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재수사팀의 수사는 김건희씨 사건 외에 다른 측면에서도 상징성이 있다. 그동안 검찰이 권력자 비리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정권교체에 따라 얼마나 다른 태도를 보여왔는지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4년간의 수사 끝에 지난해 10월 김건희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수사팀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100쪽이 넘는 프레젠테이션(PPT) 등을 활용해 처분 사유 설명에만 4시간을 할애했다. 김씨가 범행에 가담했거나 알았다는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골자였다. 그런데 서울고검 형사부 재수사팀은 새 물증과 정황 증거들을 찾아냈다. 모두 김건희씨를 무혐의 처분한 중앙지검 수사팀 수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증거들이다. 재수사팀은 수사 착수 1개월여 만에, 특히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직후 확보했다.

그동안 검찰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검찰개혁’이 시도됐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검찰은 개혁 드라이브가 걸리면 정권 초기엔 지난 정권에, 정권 말기엔 힘 빠진 권력에 칼을 겨누고 ‘성과’를 냈다(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정치자금 수사,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등). 박근혜 정부 시절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와 문재인 정부 시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살을 도려내기도 했지만 금방 새 살과 근육이 자라났다. 지금의 검찰 특수수사 총량은 중수부가 문을 닫고 검수완박으로 수사권이 박탈되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76년 만에 검찰 해체?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 다시 검찰개혁이 추진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신호탄을 쐈다. 방향은 명확하다. 검찰을 더 이상 ‘고쳐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6월11일 발의한 검찰개혁 4법이 대표적이다. 4개 법안은 하나의 패키지로서 ‘검찰 해체’에 방점이 찍혔다. 민주당은 올해 9월 정기국회 전 본회의 처리를 마치고, 이후 1년간의 유예를 거쳐 내년 9월까지 개혁을 완료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 속도전을 예고했다.

검찰개혁 4법은 △검찰청법 폐지법 △공소청 신설법 △중대범죄수사청 신설법 △국가수사위원회 신설법 등이다(〈그림 1〉 참조). 검찰청법 폐지법은 이번 검찰개혁의 방아쇠 역할을 한다. 1949년 제정된 검찰청법을 폐지함으로써 검찰 조직을 법적으로 해체하는 것이다.

검찰청법 폐지법은 기존 검찰 조직의 법적 근거를 제거하면서 그 직무를 수행할 새로운 기관의 설립을 필연적으로 만든다. 공소청 신설법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법이 함께 발의 된 이유다. 법무부 산하에 마련될 공소청은 오직 공소 제기(기소)와 법정에서의 공소 유지로 한정된다. 이 법안은 명목상 ‘검사’라는 직책은 유지하지만 재판 단계에만 집중하도록 해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역할을 한다. 공소청장은 검찰총장을 겸직한다. 다만 기존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격하될 가능성이 높다.

중수청은 현재 검찰의 권한과 마찬가지로 6대 중대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와 내란·외환죄, 마약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검찰에서 검사들이 옮겨가고, 경찰과 다른 사정기관에서도 합류한다. 이에 따라 ‘검사’라는 호칭 대신 ‘수사관’이라는 호칭을 쓰게 된다. 공소청과 중수청 신설은 검찰 위상의 축소까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무총리 직속으로 설치되는 국가수사위원회(국수위)는 수사기관인 중수청과 경찰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업무 조정 및 관할권 정리, 관리·감독 등 업무를 담당한다(〈그림 2〉 참조). 국수위가 설치되면 수사기관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된다. 그동안 검찰이 보완 수사 요구 및 기소 권한 등으로 주요 사정기관의 맏형 노릇을 해왔다.

 

이번 검찰개혁은 과거의 실패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검찰 해체’는 단순 조직개편을 넘어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 근간을 바꾸는 일이다. 이 같은 급진적 시도는 문재인 정부의 입법적 개혁(검수완박)을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령(검수완복, 검찰 수사권 완전 복원)을 통해 무력화한 것에 대한 강도 높은 반응이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의 수사권을 축소하되 완전히 없애지는 않는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검사 출신들이 이끈 윤석열 정부는 이러한 입법적 변화가 행정부의 조치(시행령 개정)로 쉽게 뒤집힐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검찰에 조금이라도 수사권을 남겨두는 것은 실수이며, 언제나 그 권한을 다시 확장하려 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검찰은 고쳐 쓸 수 없다’는 구호가 이러한 민주당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칼’ 통제하려다 ‘방패’ 부수지 않으려면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가동된 3개 특검은 단순히 검찰개혁과 동시에 진행되는 일이 아니라 공생관계다. 이번 3대 특검법은 윤석열 정부의 비위 의혹 수사와 함께 해당 의혹들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 정황을 수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만약 특검이 검찰 비위를 밝혀낸다면 개혁의 명분이 된다. 3대 특검은 또 역대 최대 규모인 120명의 검사를 파견 형태로 받아 최장 170일 동안 본연의 업무에서 이탈시킨다. 검찰 조직 내에 막대한 인력 공백이 불가피해졌고 이에 따라 검찰이 해체 시도를 막아낼 물리적 역량을 약화한다. 특검이 개혁 시도에 강력한 동력이 되는 셈이다.

이번 검찰개혁 구상의 방향은 명확하다. 검찰의 강력한 권한을 중수청과 경찰, 공수처 등으로 분산하는 것이다. 다만 강도 높은 개혁인 만큼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컨트롤타워 문제가 대표적이다. 중수청과 경찰, 공수처 위에 국무총리 직속 국가수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조정, 감독, 감사권을 행사한다. 국수위 위원은 모두 11명으로 대통령이 전원 임명한다. 국가수사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4명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4명은 국회, 3명은 별도의 추천위원회가 선출 및 추천하는데, 현재 민주당 의석수(169석)를 고려하면 여당 몫이 2명 이상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여당이 11명 중 최소 6명을 임명하는 셈이다. 추천위원회도 법원행정처장, 법무·행안부 장관, 공소청장, 국무조정실장이 1명씩 추천한다. 검찰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수사기관의 컨트롤타워로 재집중되고, 이를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인사로 장악하게 되는 구조다.

6월11일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검찰개혁 4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에 집중한 개혁안이 검찰의 편향적 수사 행태 문제를 바로잡는 데만 방점이 찍혀 있고, 형사절차를 통한 일반 시민들의 피해 구제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과거 사례에서 일부 확인된다. 2021년 문재인 정부 시절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의 경찰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부여됐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고소인은 기존 검찰 단계에서 할 수 있었던 이의신청 절차를 별도로 가져야 했다. 검찰은 경찰에 보완 수사를 요구하는 것만으로도 절차 지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사건 처리 속도가 늦어졌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을 보면, 6개월이 초과된 경찰 사건의 비율은 2019년 5.3%→2020년 6.5%→2021년 9.7%→2022년 14%→2023년 11.9%였다.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2021년부터 증가하는 추세다. 송치 단계부터 사건을 접하게 되는 검찰의 사건 처리 속도도 늦어지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검찰이 6개월 넘도록 처리하지 못한 장기 미제 사건 수는 2021년 2503건→2022년 3932건→2023년 6594건→2024년 9123건으로 늘었다.

이는 과거의 상대적으로 덜 급진적인 개혁만으로도 일반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적 지연이 발생했음을 보여준다. 개혁의 정치적 목표와 현장 실무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있었다는 뜻이다. 이번 검찰개혁 법안은 중수청, 경찰청, 공수처가 한 울타리에 모이는 구조다. 사건 관할부터 절차까지 혼란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칼’을 통제하려는 싸움이, 자칫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방패’를 부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개혁이 낳을 수 있는 중대한 부작용이다. 이번 검찰개혁은 단순히 권한을 재분배하는 것을 넘어, 기존 권력구조와 사법체계 근간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이번 개혁은 디테일부터 치밀하고 완성도 높게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