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유튜브 알고리즘 한 달 동안 빠져보니
생애 처음으로 유튜브에 새 계정을 만들어 한 달 가까이 극우 유튜브를 관찰했다. 그들은 물량 공세로 여론을 장악하려 했다. 1월20일 현재 2만8000여 명이 모인 댓글 조작 현장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오성 기자다른기사 보기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시시하다. 방송사 뉴스, 〈시사IN〉 유튜브를 비롯한 시사 콘텐츠, 1980~1990년대 영화 및 히트곡 소개, 더러 건강과 프로야구 콘텐츠 정도다. 기자로서 직무유기일 수 있지만, 보수 유튜브는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뻔하디뻔한 ‘진보 성향 중년 아재’의 알고리즘이랄까.
2024년 12월3일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 달라졌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대국민 담화 등 그의 발언이 극우 유튜버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물증’이 속속 제시됐다. 급기야 2025년 새해 첫날 윤석열은 지지자들에게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라는 편지를 보내 스스로 극우 유튜브 채널 시청자임을 명실공히 ‘인증’했다. 국민의힘 김민전·윤상현 의원이 계엄을 옹호한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하는 등 여당 내에서도 극우 유튜브를 정치 활동의 플랫폼으로 삼는 이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제 극우 유튜브는 가십이나 조롱거리를 뛰어넘어, ‘체제의 위협’이 되어가고 있다. 이들의 세계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작심하고 들여다볼 이유가 생겼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진영 대결의 시대에 아주 조그만 토론의 단초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극우 유튜브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2024년 12월15일 저녁. 유튜브 새 계정을 팠다. 아이디는 ‘magaOOOOO’. 트럼프의 구호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차용했다. 내 생애 첫 번째 ‘서브계정’이다. 이처럼 손쉽게 익명의 캐릭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새삼 섬뜩했다.
새 계정의 유튜브 첫 화면은 마치 순백의 세계 같았다.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검색을 통해 좋아할 만한 영상을 찾으세요’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아이에게 처음 말을 가르치는 부모의 심정으로 검색어를 쳤다. ‘자유통일당.’ 전날(2024년 12월14일)의 강렬했던 기억 때문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 나는 보수 단체의 집회를 취재하러 광화문으로 갔다. 그곳은 상상 초월의 다른 세상이었다. 내란을 옹호하고, 부정선거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반(反)윤석열 정치인들을 악마화하는 공간이다. ‘극소수 태극기 부대’의 저항이라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광화문역 네거리에서 숭례문 앞까지 수만 명이 운집했고, 그 중심에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이 있었다.
맨 위에 뜬 영상을 클릭했다. ‘자유통일당은 보수 진영 재구축의 선봉이 되겠다’라는 제목이었다. 열흘 전 올라온 이 영상의 조회수는 3300회였다. 자유통일당 채널의 구독자 수도 4만명에 불과했다. 광화문에서 보인 존재감과 달리 유튜브에서 자유통일당은 ‘대세’가 아니었다.
조국 집안이 ‘징역 비즈니스?’
그러나 전광훈 목사의 예배 생중계 때는 4000~5000명이 동시 시청했다. 댓글 내용이 특이했다. 태극기 이모티콘과 함께 “은평갑 신사 A조 대표 최○○ 시청 중입니다” “하남시 덕풍1동 대표 15명 시청 중입니다” “대구 대명동 ○○○ 외 5인 시청 중입니다”처럼 출석을 인증하는 문화가 있었다. 전광훈 목사가 만든 ‘자유마을’ 회원들로 보였다.
자유마을은 ‘자유통일과 주사파 척결을 위해’ 전 목사 측이 전국 3500여 개 읍면동에 설치하려는 ‘우파 마을조직’이다. 자유마을 강령에 따르면 ‘마을 리더를 체계적으로 훈련시킨 후 대한민국을 재건할 사회 및 정치 리더로 성장시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실시간 채팅창에 글을 남겨보려 했으나, 구독 후 24시간이 지난 이용자만 글을 남길 수 있었다.
12월18일 오전 9시. 이봉규TV 섬네일에 “겁대가리 없이 군인을 경찰이?”라는 제목이 떴다. ‘성호 스님’이라고 불리는 전직 승려와 전화 연결이 돼 있었다. ‘국태민안 멸북통일’이라며 인사말을 건넨 그는 경찰이 계엄에 관련된 군 인사를 체포하려는 데 불만을 토하며 “개미 한 마리도 안 죽었는데 광우병 때처럼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무차별 난사였다. 북한 체제를 비판하다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폄훼 발언을 하는 등 맥락 없는 말이 마구 쏟아졌다. 진행자도 “기가 대단하시다”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구독자 약 95만명을 보유한 채널답게 실시간 채팅이 활발했다. 그중 “민주당도 부정선거 인정했다”라는 댓글이 반복해서 올라왔다. 의아해서 확인해보니 전날인 12월17일 우파 성향 인터넷 매체 〈스카이데일리〉의 보도가 출처였다. 더불어민주당 중진인 김두관 전 의원이 22대 총선 관련 “전자개표기에 문제가 많아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법원에서 주장했다는 내용이다.
사실일까? 김두관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맞다”라고 밝혔다. 어떻게 알았는지 해당 매체에서 연락이 왔노라고 설명했다. 김 전 의원은 22대 총선에서 경남 양산을 지역구에 출마해 김태호 국민의힘 후보에게 2000여 표 차이로 패하자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김두관 전 의원은 “전국의 모든 선거구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양산을에 대해서만 주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 시점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보수 유튜버의 먹잇감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의 말대로 이후 며칠간 유튜브에는 “민주당 중진, 부정선거 인정” 유의 제목을 단 콘텐츠가 쏟아졌다.
윤석열이 즐겨 보는 것으로 알려진 이봉규TV는 하루에도 많게는 10차례씩 생방송을 진행했다. 이날 오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확성기 시위를 벌인 유튜버 안정권씨가 출연했다. 이날의 이슈는 조국 전 의원의 딸 조민씨였다. “구치소 주소 공개한 조민 ‘아빠 면회는 선착순’”이라는 우파 성향 인터넷 매체 〈데일리안〉의 기사를 소개했다. 이들은 “조민이 구치소 주소를 공개하면서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이 집구석은 전 세계 최고의 징역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기사 내용의 원 출처인 조민씨의 페이스북 내용은 이들의 말과 완전히 달랐다. 면회 횟수가 제한돼 있으므로 가족에게 면회 기회를 양보해달라고 지지자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면회를 양보하는 대신 조국 전 의원에게 편지를 보내달라며 구치소 주소를 공개한 것이었다. 〈데일리안〉 기사에도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 기사조차 읽지 않았거나, 읽고도 왜곡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방송 도중 ‘중공댓글부대’라는 아이디가 꾸준히 글을 올렸다. 내용이 이랬다. “윤석열 대통령님 대선에서 10프로 이상 당선될 것을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조선족을 동원해 바꿔치기. (바꿔치기한) 투표함이 시민들에게 들켜서 7시간 사투. 그 난리를 쳐서 0.7프로(밖에)는 조작 못함.”
일부는 사실이었다. 2022년 대선 당일 밤 일부 유튜버와 윤석열 후보 지지자들이, 투표함이 모두 개표소에 들어갔는데 또 다른 차량이 투표함을 옮기고 있다고 주장하며 7~8시간 동안 대치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부정선거의 대상으로 지목된 투표함을 열어보니 윤석열 1041표, 이재명 959표로 나타났다. 인천지방법원은 2023년 1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유튜버 2명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날 방송에서 안정권씨는 이런 주장도 펼쳤다. 2024년 10월 ‘윤석열-한동훈 콜라 회담’ 직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반드시 구속시켜버린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회동 직후 한 전 대표가 주변에 전화를 거는 모습이 목격됐는데 목소리가 너무 커서 다 들렸다는 게 안씨의 주장이다. 안씨가 한 전 대표에 대해 “쓰레기 새끼”라고 말하자 이봉규씨는 “인간성이 아주 더러운 놈”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안씨의 주장 직후 채팅창에 슈퍼챗이 쏟아졌다.
‘큰일 났다’ ‘난리 났다’ ‘끝장전!’
2024년 12월19일 아침. 새 계정을 만든 지 나흘 만에 알고리즘이 활성화됐다. 따따부따 배승희(2만명 시청 중), 펜앤드마이크(1만3000명 시청 중), KNL(강용석 나이트 라이브)(6000명 시청 중) 등 이름을 들어본 채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뜻밖의 등장인물도 있었다. ‘대장동 사건’ 핵심 연루자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었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으로 수감됐다 출소했다는 건 알았지만, 유튜버로 활동 중인지는 몰랐다. 구독자 수 29만명, 실시간 시청자 수도 5000명에 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비난, 윤석열에 대한 옹호 등이 주된 콘텐츠였다. 영락없는 보수 유튜버였다.
극우 유튜브 채널의 공통점은 물량 공세다. 이슈가 터지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5분, 10분짜리 관련 방송을 내보낸다. ‘섬네일(대표 이미지)’도 자극적이다. ‘큰일 났다!’ ‘난리 났다!’ ‘끝장전!’ 따위 제목을 붙인 동영상이 차고 넘친다. 그러나 제목과 내용은 무관하다.
가령 2024년 12월20일 밤 구독자 11만명을 보유한 ‘Cat’s ○○○○○’ 채널의 제목은 ‘엄청난 핵폭탄 터졌다! 선관위 난리 났다! 李 끝났다! 정청래 의원직 상실!’이었다. 밤 10시임에도 1000여 명이 시청 중이었는데, 몇몇 시사 방송의 음성을 짜깁기해 틀어놓았을 뿐 무슨 핵폭탄이 터졌다는 건지, 정 의원이 왜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실시간’ 수족관 이미지 배경으로 윤석열의 상반신 사진을 띄워놓은 화면만 10시간 넘게 송출 중이었다. 1월2일 ‘속보! 무안공항 드디어 터졌다! 이재명 난리 났다!’라는 영상도 그랬다. 이재명 대표가 무안공항을 방문해 항공기 사고 유가족을 위로했는데, 이것이 ‘억지 위로 쇼’라는 주장이 고작이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진성호씨는 보수 진영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181만명)를 보유한 유튜버다. 그는 1월8일 하루에만 6~7분짜리 동영상 12편을 올렸는데, 섬네일에 ‘이재명 난리 났다’라는 제목이 들어간 게 다섯 편이었다. 다른 두 편에는 ‘이재명 혼수상태’라고 적혀 있었다.
영상은 여러 편이지만 몇몇 영상은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었다. 전날 경찰 출신인 이상식 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체포영장 만기를 앞두고 당과 국가수사본부 간 메신저 역할을 하느라 전화기에 불이 났다”라고 SNS에 밝힌 걸 두고 민주당이 경찰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보수 진영의 비판을 전달하는 내용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이상식 의원은 SNS에서 ‘메신저 역할’ 대목을 삭제했다. 보수 진영으로서는 뜯어먹기 좋은 소재일 수 있지만, 이 내용이 왜 ‘이재명 혼수상태’ ‘이재명 난리 났다’라는 섬네일을 달 만큼 이재명 대표에게 치명적 악재가 될 일인지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2025년 새해가 밝았다. 못 보던 영상이 떴다. ‘갓신 내린 무당이 본 이재명의 운명은?!’이라는 제목이었다. ‘○○ 할머니’라는 무속인이 운영하는 이 채널은 구독자가 2만명인데, 조회수가 500만 회나 됐다. 2024년 9월30일 올라온 이 영상에서 무속인은 “이재명이 형살(형벌)을 끼고 있다. 올해 동짓달 되면서 기운이 고꾸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댓글의 상당수는 “맞힌 게 하나도 없네” “윤씨가 먼저 가겠네” 등 보수 성향 이용자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을 시청하고 나니 유튜브 쇼츠(짧은 영상)에도 정치 무속이 나타났다. 한 남성 무속인은 이재명을 일컬어 “명예와 권력을 손에 쥐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며 향후 재판과 관련해 “이재명의 정치 인생이 끝날 수 있다”라고 예언했다. 이 영상에는 ‘좋아요’ 약 4만 개, 댓글 약 1700개가 달렸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영상도 속속 나타났다. 구독자 30만명을 보유한 여성 유튜버 ‘감동란’은 ‘노출 콘셉트’로 남성 시청자들을 겨냥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등 따습고 배부르니 X을 싸는 동덕여대(조회수 56만 회)’ ‘모택동덕여대생에게 한마디(89만 회)’ 등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소설 〈채식주의자〉 내용을 거론하며 한강 작가를 비난하는 영상도 있었다.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영상도 자주 노출됐다. ‘동북공정’ 같은 ‘고전’부터 시진핑 체제의 붕괴를 점치는 영상 등 다양했다. 이재명 대표가 중국과 타이완의 양안 관계에 개입하지 말자며 “중국에도 ‘셰셰'(謝謝·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라고 한 영상도 수시로 나타났다. 특히 국민의힘 일부 의원이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이 나오고 있다”라고 발언한 시점과 맞물려 중국인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한남동에 왔다가 봉변을 당하는 쇼츠 영상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이 여성이 평범한 여행자인지, 탄핵 집회 참석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탄핵안 가결 이후 ‘우파의 결집’은 유튜브에서도 확인됐다. 1월1일 윤석열의 편지 이후 이전까지 수천 명대에 머물렀던 채널의 실시간 시청자 수가 크게 늘어났다.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을 하루 앞둔 1월2일 오후 ‘전광훈 라이브’와 ‘홍철기TV’ 등의 시청자 수는 1만5000명에 달했다. 같은 시각 ‘오마이TV(4만명)’ ‘매불쇼(20만명)’ 다음 날 아침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38만명)’에 비하면 적지만 확연히 늘어난 수치였다.
1월2일 오후 가장 많은 이들이 보는 우파 채널은 ‘그라운드씨’였다. ‘자유의 전사들이여 관저 앞으로’라는 한남동 관저 앞 중계 영상을 2만3000여 명이 실시간으로 보고 있었다. 진행자는 한남동 집회에 참석한 2030 남성을 잇따라 인터뷰했다. 이들은 윤석열의 편지에 감동받아 집회에 참석했노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종북 주사파, 중국 공산당을 척결하자고 외치는 이도 있었다. 화면 아래로 ‘긴급 상황’ ‘공수처 체포영장 집행’ 등 긴박한 문구가 번쩍였다.
1989년생으로 알려진 유튜버 김성원씨가 운영하는 ‘그라운드씨’는 2030 남성에게 인기를 끄는 우파 채널이다. 그라운드씨의 씨(C)는 ‘Conservatism(보수주의)’의 이니셜에서 따왔다고 한다. 김씨는 역사 강사 황현필씨의 이승만 비판 영상을 반박하는 영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말하자면 떠오르는 우파 이데올로그다. 2024년 7월 “당신도 어쩌면 ’보수‘일지도 모른다”는 제목의 54분짜리 영상에 그의 주장이 요약돼 있다.
그는 좌파 세계관은 대중을 ‘절대 선’으로 보지만, 대중이 타락하고 우매해서 세상이 망한 경우가 많다며 대중의 지지로 총통이 된 아돌프 히틀러를 예로 든다. 그러면서 채 상병 사건 문제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데, 앞으로 온갖 이리 떼들이 툭하면 대통령을 탄핵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재명과 조국, 두 사람이 야권에서 사이비 교주처럼 구는데 자칫하면 ‘종교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리 새롭진 않았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과 윤석열 시대의 방위산업 수출 증가를 함께 추켜세우거나, 민주당의 지역의사제 정책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막는 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식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에 대한 인식도 기존 우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요컨대 그라운드씨는 새로운 이데올로그가 아니라, 이미 있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뉴페이스’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회수 39만 회를 기록한 이 영상에는 “살다 살다 이렇게 스마트한 젊은 보수 우파 지식인은 처음 봅니다” 같은 극찬 댓글 2400개가 달렸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놀라웠다. 한 달 가까이 지켜본 결과 극우 채널 외에 레거시 미디어는 거의 뜨지 않았다. 윤석열 탄핵에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는 이유로 극우 유튜버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는 ‘조중동’ 채널도 보이지 않았다. 유일하게 자주 노출되는 채널이 대구 지역 일간지 〈매일신문〉이었다. KBS의 영상도 하나 떴는데 “태극기 펄럭이며 ‘탄핵 반대’- 12월14일 광화문 집회 부감 촬영분”이라는 영상이었다. 댓글이 1만2000개나 달렸다.
앞서 말했듯 극우 유튜브 세계의 규모는 진보 성향 유튜브에 비하면 작다. 구독자 수가 비슷하다 해도 실시간 시청자 수가 많게는 10배 정도 차이가 났다. 콘텐츠 ‘퀄리티’도 떨어진다. 그날 이슈를 판박이처럼 똑같이 되풀이하는 군소 채널이 매우 많았다. 진행자 1인이 홀로 진행하면서 ‘자발적 후원 계좌번호’를 필수로 띄워놓은 방송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슈퍼챗 규모는 만만치 않았다. 한 유튜버는 1월3일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당시 탄핵 촉구 집회에 뛰어들어 방송을 진행했는데 몇십 분 만에 100만원 가까운 슈퍼챗이 쏟아졌다. 해외에서 미국 달러나 일본 엔화로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여론조작 방’에서 법원 폭동 사태 음모론도 제기
1월7일 신남성연대의 영상이 하나 떴다. ‘여러분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이었다. 신남성연대는 안티 페미니즘 영상 등으로 인기를 끌면서 구독자 72만명을 보유한 유명 채널이다. 최근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 중인 2030 남성 청년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상 속에서 신남성연대 대표 배인규씨는 돈이 없다고 했다. 조회수는 많지만, 유튜브로 인한 수익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과거 사이버 폭력으로 채널이 정지됐다가 복구된 바 있는데, 그로 인해 유튜브 수익 창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배씨는 “직원들 봉급, 사무실 임대료, 집회 비용 등을 내기 위해 한 달에 1000원씩 후원해달라”고 부탁했다. 해당 영상이 올라온 지 6시간 만에 “후원했습니다”라는 댓글 약 4000개가 달렸다.
신남성연대 채널을 살펴보던 중 1월7일 텔레그램 주소 하나를 발견했다. ‘여론정화 방’이라는 곳이었다. 접속해보니 이미 80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공지사항에 ‘기사 댓글 점령 시 꿀 노하우’를 알려드린다고 적혀 있었다. “1. 기사 댓글 ‘순공감순’ 난으로 이동. 좌빨 댓글에 싫어요 누르기(하루 50개의 추천, 비추천 제한이 있으니 신중하게). 2. 우파 댓글(정상적이고 논리적인)에 좋아요 누르기.”
텔레그램 방 운영자는 1만명이 될 때까지 ‘대기하라’고 공지했다. “지시만 내려주십쇼. 조지겠습니다” “짱깨북괴 새끼들아 니넨 365일 24시간이 계엄이잖아~” 따위 글이 올라왔다. 1월8일 1만명이 넘어서자 ‘작전’이 시작됐다. 윤석열 체포를 막겠다는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오마이뉴스〉 기사가 첫 번째였다. “화력총공! 좌파들이 관저 지키는 국회의원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선플로 뒤덮지 않으면 국회의원 겁먹어서 다신 안 나옵니다.” 몇 시간 후 “ㅋㅋㅋ 정화 완료 다음 기사 가즈아”라는 운영자의 메시지가 떴다. 실제로 네이버에서 확인해보니 이 기사에서 가장 많은 공감(5974개)을 얻은 건 “북조선 지령받는 오마이걸레 선전 선동에 눈이 멀었구나”라는 댓글이었다.
이후 국민의힘의 특검법 부결을 비판하는 MBC 기사, ‘백골단’이라 불리는 반공청년단 출범을 알리는 〈조선일보〉 기사 등 여러 기사에 걸쳐 댓글 작업이 이뤄졌다. “MBC 1위 기사까지 점령했습니다! 애초에 추천 1000개 박힌 댓글까지 내리면서ㅋ 파이팅~^^”.
명백한 여론조작이었다. 운영자는 이런 공지를 내놨다. “기계적 댓글 조작 드루킹은 불법이지만, 직접 시민들이 댓글 전쟁을 하는 것은 ‘합법’입니다. 이미 2년 전에 민주당이 직접 고발했지만 불기소 처분(조사받을 가치도 없었다는 것이죠). 이래 놓고 자기들은 댓글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ㅋㅋ 내로남불 개○○○들.”
댓글 전쟁이 ‘합법’이라는 그의 말은 일부 사실이다. ‘매크로’ 프로그램 등을 사용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특정 모임·단체 회원들이 대가 없이 언론 기사에 공감하거나 분노해 떼로 댓글을 다는 건 ‘표현의 자유’로 여겨져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법의 빈틈을 악용한 여론조작 현장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월20일 오후 3시 현재 ‘남성연대 여론정화방’의 인원은 약 2만8000명으로 불어났고, ‘온라인 상태’ 대기 인원은 2858여 명이었다. 1월14일께 텔레그램방 이름을 과거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지자 그룹에 빗댄 ‘손가락혁명군’으로 바꾼 이들은 1월19일 서울 서부지방법원 폭동 이후에도 관련 여론조작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배인규 신남성연대 대표는 1월19일 저녁 ‘필독공지’를 통해 “새벽 시간 서부지방법원으로 국민들이 진입했을 때 경찰은 이를 방관한 정황도 발견되었다. 마치 사후에 강력한 처벌을 목적으로 폭동을 유도하려는 계획된 방조 행위처럼 보였으며, 결과적으로 경찰의 의도대로 상황이 전개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라며 ‘폭동 유도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나의 극우 유튜브 관찰기는 여기까지다. 애초의 목적은 이들의 세계를 최대한 ‘이해’함으로써 진영 대결의 시대에 작은 완충지대라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과욕이었다. 보수 언론인 조갑제씨는 윤석열의 계엄 선포 담화문에 거짓, 과장, 왜곡, 저속, 격분의 낱말들이 나열됐다고 평가했다. 부정선거 주장에 대해서는 극우와는 차원이 다른 더 저질의 음모론이라고 직격했다. 극우 유튜브의 세계가 꼭 그랬다. 거짓, 왜곡, 과장이 난무했다. 심지어 공론장을 오염시키는 댓글 조작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질’이었다. 날마다 무수한 혐오와 적대의 발언을 마주하다 보니 정신이 피폐해질 지경이었다. 새삼 윤석열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는 대체 어떤 정신으로 이 방송들을 시청하고 있는 걸까?
※12·3 쿠데타 제보 받습니다.
〈시사IN〉은 12·3 쿠데타 취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12·3 쿠데타와 관련한 대통령실 또는 군의 움직임을 알거나 목격한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는 123@sisain.co.kr 메일로 해주세요. 이 메일은 해외 서버를 사용합니다.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제2의 12·3 쿠데타를 막기 위해서라도 〈시사IN〉은 전모를 끝까지 취재하겠습니다. 〈시사IN〉은 기록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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