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의 의미★
지금은 별로 쓰지 않는 말이 되었지만 수 십년 전만 해도 아이들을 어르거나 놀릴 때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고, 너의 진짜 엄마는 지금도 그곳에서 예쁜 옷과 맛있는 음식을 해놓고 울면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어른들로 많이 들었다.
그렇다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이 말은 과연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아주 재미있는 유래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이 처음 생겨난 곳은 그전에는 강원도였다가
지금은 경상북도가 된 영주시 순흥면 소수서원 옆에 있는 ‘청다리’라는 곳이다.
순흥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지역으로 원래 고구려 땅이었다가 신라로 편입되었던 곳이다.
고구려 때에는 급벌산군이었다가 신라로 편입되면서
경덕왕 때에 급산군으로 고쳤다가 고려 때에 와서는 흥주로 되었고 고려말 조선초에 순정 혹은 순흥으로 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지니는 순흥은 영남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자리를 해오면서 그 명성을 떨쳤는데, 북쪽에는 송악이 있고 남쪽에는 순흥이 있다고 할 정도로 큰 도시였으며 문화의 중심지였다.
비가 올 때도 비를 맞지 않고 처마밑으로 십리를 갈 수 있을 정도로 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는 말은 순흥의 번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명성을 떨치던 순흥이 멸망의 길을 걸은 것은 세조 때의 일로 이곳으로 유배 온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역모의 땅으로 지목되면서부터였다.
“다리 혹은 청다리 밑에서 아이를 주워왔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소수서원은 1542년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의 사묘를 세운 후 이듬해에 백운동 서원을 건립한 것이 시초였다.
그 후 1550년에 풍기 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이 임금께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이라고 하였으니 우리나라의 체계적인 사립대학은 여기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처럼 최초의 사액서원이 성립되자 이때부터 전국의 선비들이 공부와 수양을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순흥은 다시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소서서원에 공부를 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드는 선비들은 주로 젊은 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이 그 지역의 처녀들과 사랑을 나누면서부터 사회적인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남녀가 사랑을 하면 거의 필연적으로 생기는 문제가 바로 임신인데, 현대사회처럼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인지라 아이를 가지면 낳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교사회였던 조선조 사회에서 혼인하지 않은 처녀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었으므로 당사자 집안에서는 비밀리에 이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갓 태어난 아기를 강보에 싸서 한 밤중에 소수서원 옆에 있는 청다리 밑에 갖다 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버려진 아이는 누군가가 데려가지 않으면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되는데, 이 소문이 점차 퍼져나가자 이번에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많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선비라면 최고의 신분이고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핏줄을 데려가 기르는 것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안에서는 최고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전국에서 몰려든 아이 없는 사람들은 운이 좋으면 도착한 다음날 새벽에 아이를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운이 나쁘면 몇 달씩을 기다려서 아이를 얻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전국으로 입양된 아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런 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지고 지금도 그 말이 남아있을 정도인 것을 보면 상당수의 아이가 입양되었다고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겨난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변화를 거듭하여
현대에 들어와서는 해당 지역의 다리를 증거물로 하는 이야기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는
넷째라서 이런 소리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ㅋㅋ)
~~ 재미있는 이야기라 옮깁니다^^♥^^
톨스토이의 장편 소설인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이제껏 쏟아낸 생각들이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의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인생을 부러워만 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자기 생각을 돌아보세요.
생각의 방향이 잘못된 곳을
향해 있지는 않은 지 확인해보세요.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의 방향을 바꾸세요.
생각의 방향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벗님네 ^^
월모닝~*♡*~
오늘도 화이팅 ~~!!!
재상 유성룡(柳成龍)일화
재상 유성룡[柳成龍]의 계서야담 [溪西野譚] 조선 선조때의 재상(1542~1607) 의성 출생으로 자는 이견(而見) 호는 서애(西厓) 이다
이황의 문인인 그는1566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후 영의정꺼지 지냈다
임진왜란때 도체찰사(都體察使) 로 군무를 총괄하며 이순신 권율등 명장을 등용하였다
도학 문장 서예로 이름을 떨친 문신겸 학자인 동시 바둑의 애호가 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명(名) 재상유성룡 에 얽힌 전설같은 이야기..
유성룡(柳成龍) 에게는 바보 숙부(痴叔?치숙) 한사람이 있었다.
그는 콩과 보리를 가려 볼줄 모를정도로 바보였다.
그런데 어느날 그 숙부가柳成龍 에게 바둑을 한 판 두자고 했다.
柳成龍 은 실제로 당대 조선의 국수(國手)라 할만한 바둑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아버지 항렬되는 사람의 말이라 거절하지 못하고
두었는데 막상 바둑이 시작되자 유성룡은 바보 숙부에게 초반부터 몰리기 시작하여
한쪽 귀를 겨우 살렸을 뿐 나머지는 몰살 당하는 참패를 했다.
바보 숙부는 대승을 거둔 뒤 껄껄 웃으며 "그래도 재주가 대단하네.
조선 팔도가 다 짓밟히지는 않으니 다시 일으킬 수 있겠구나." 라고 말했다.
이에 柳成龍은 숙부가 거짓 바보 행세를 해 왔을 뿐, 異人(이인)이라는 것을 알고 의관을
정제하고 절을 올리고 무엇이든지 가르치면 그 말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숙부는 아무날 한 중이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자고 할 것인데,
재우지 말고 자기한테로 보내라고 했다.
실제 그날, 한 중이 와 재워주기를 청하자柳成龍 은 그를 숙부에게 보냈는데
숙부는 중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네 본색을 말하라고 해
그가 豊臣秀吉(토요토미 히데요시) 이 조선을 치러 나오기 전에柳成龍을
죽이려고 보낸 자객이라는 자복을 받았다.
그리하여 柳成龍은 죽음을 모면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의정의 자리에서 사실상 국난을 극복하는 주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고 부르던 그, 異人 (이인)이 위기의 조선을 구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에 없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안팎의 사정이 모두 그렇다. 밖으로는 북한이 핵폭탄을 들고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 있는 불안요소도 그 못지않게 위험한것 같다.
이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을 한 마디로 ‘妖氣 (요기)’라고 부르고 싶다.
약 15년 전부터 천박하고 경망한 기운이 일더니
그것이 점점더 커져서 이제妖邪(요사)스러운 기운이 되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사(國事) 를 그릇되게 하고있어 나라가 여간 어려움에 처해 있지 않은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 어느때 못지않은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문교부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바 있는 석학 황산덕 선생의 명저
<복귀>에한민족은 절대로 절멸(絶滅) 하지 않는다고 하고,
그 이유를 임진왜란을 예로 들면서 이 나라는 위기를 맞으면 큰 인물들이 집중적으로
나왔는데 그것은 우리 민족이 그런 저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임진왜란을 되돌아보면 그 말은 틀림이 없다는 것을알수 있다.
그 난을 전후하여 장수로는 이순신, 권율이 있었고,
정치인으로는 유성룡, 이덕형, 이항복이 있었으며 종교 지도자로는 서산대사, 사명대사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조선오백년을 통틀어 몇 사람 나올까 말까 하는 큰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지금은 이 나라가 위기에 처한것이 분명한데, 사실은 위기가 아니라는 말인지,
어째서 그런인물이 보이지않는 것일까가 의문이다.
또 위에서 이야기한 그,溪西野譚(계서야담)에 나오는 치숙(痴叔)과 같은 이인(異人)은 왜 볼수없는 것인가,
지금이 위기의 시대인 것은 맞고, 그러한 위기에 나라를 구할 뛰어난 인물들도,
옛 이야기 속의 그 이인(異人)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바로그 큰 인물이요,異人인 것이다.
그러니까 불을 켜 들고 골목을 누비며 어떤 구세(救世)의 인물을 찾아다닐 것이 아니라
선거에서 투표를 바로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요, 사명대사요, 유성룡 대감을,
조선을 구한 이인異人,치숙(痴叔)인 것이다.
처음 만남은 하늘이 만들어주는 인연이고 그 다음 만남은 인간이 만들어 가는 인연이라 합니다.
만남과 관계가잘 조화된 사람은인생이 아름답습니다. 만남에 대한 책임은 하늘에 있고 관계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좋은관계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서로 노력하고 애쓰면 좋은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 君子의 酒道 ¤
1. 술은 남편에 비유되고
술잔은 부인에 해당되므로
술잔은 남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장부의 자리에서
한 번 잔을 돌리는 것은
소중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뜻이 있으므로
비난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일을 자주 한다는 것은,
情(정)이 過(과)하여 陰節(음절)이 搖動(요동)
하는 것이라 君子(군자)는 이를 삼가야 한다.
2. 술을 마실 때에는
남의 빈 잔을 먼저 채우는 것이 仁이고,
내가 먼저 잔을 받고 상대에게 따른 후에
병을 상에 놓기 전에 바로잡아서 상대에게 따르는 것은
仁을 행함이 민첩한 것으로지극히 아름다운 것이다.
3. 잔을 한번에 비우는 것을 明(명)이라 하고
두 번에 비우는 것은 周(주),
세 번 이후는 遲(지)라 하고,
아홉 번이 지나도 잔을 비우지 못하면
술을 마신다고 하지 않는다.
4. 술을 마심에 있어 먼저 갖추어야 할 네 가지가 있다.
첫째 : 몸이 건강하지 않은즉 술의 독을 이기기 어렵다.
둘째 : 기분이 평정하지 않은즉,술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셋째 : 시끄러운 곳.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
좌석이 불안한곳. 햇빛이 직접 닿는 곳.변화가 많은 곳.
이런 곳에서는 많이 마실 수 없다.
넷째 : 새벽에는 만물이 일어나는 때다.
이때 많이 마신즉 잘 깨지 않는다.
5. 천하에 인간이 하는 일이 많건만
술 마시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 다음은 여색을 접하는 일이요.
그 다음은 벗을 사귀는 일이요.
그 다음이 학문을 하는 일이다.
6. 말 안 할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은 말을 잃어버리는 일이요,
말할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다.
술 또한 이와 같다.
술을 권하지 않을 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술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술을 권할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술을 권함에 있어
먼저 그 사람됨을 살피는 것이다.
7.술에 취해 평상심을 잃는 자는 신용이 없는 자이며,
우는 자는 仁(인)이 없는 자이며,
화내는 자는 義(의)롭지 않는 자이며,
騷亂(소란)한 자는 禮義(예의)가 없는 자이며,
따지는 자는 智慧(지혜)가 없는 자이다.
그런 까닭에 俗人(속인)이 술을 마시면 그 성품이 드러나고,
道人(도인)이 술을 마시면 천하가 평화롭다.
속인은 술을 추하게 마시며,
군자는 그것을 아름답게 마신다.
8.술자리에서의 음악이란 안주와 같은 뜻이 있고
술 따르는 여자는 그릇의 뜻이 있다.
어떤 사람과 술을 마시느냐 하는 것은
때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술자리는 아무런 뜻이 없이
한가롭게 술만을 즐길 때이다.
9.술자리에는 먼저 귀인이 상석에 앉는데,
우선 편안한 자리를 상석이라 하고,
장소가 평등할 때는 서쪽을 상석으로 한다.
귀인이 동면하고 자리에 앉으면
작인은 좌우와 정면에 앉고모두 앉으면
즉시,상석에 있는 술잔에 먼저 채우고
차례로 나머지 잔을 채운다.
이때, 안주가 아직 차려지지 않았어도 술을 마실 수 있으며,
술잔이 비었을 때는 누구라도 즉시 잔을 채운다.
술을 따를 땐 안주를 먹고 있어서는 안되며,
술잔을 받는 사람은
말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10.술을 받을 때나 따를 때는 술잔을 잡고 있어야 한다.
술잔을 부딪치는 것은 친근함의 표시 이나
군자는 이 일을 자주 하지 않는다.
술잔을 상에서 떼지 않고술을 받아서는 안되고,
마실 때는 일단 잔을 상에서 들어올리고
멈춰서 사람을 향한 후에 마신다.
술을 마실 때는 잔을 입술에 대고
손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 마신 후,잔은 상에 내려놓지 않고 일단 멈추고
약간 밖으로 기울여
술잔 속을 보이도록 한 후 내려 놓는다.
마실 때, 손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술잔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술은 두 손으로 따르고 두 손으로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술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며,
또 두 손으로 마시는 것은
술을 따라준 사람을 귀히 여긴다는 뜻과
술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잔이 넘어져 술이 조금 쏟아졌을 때는 그대로 두고
모두 쏟아졌으면 즉시 그것을 다시 채워주고
채워준 사람에게 미안함을 표시한다
술이 안주에 쏟아졌을 때는
그 안주를 먹어도 좋고,
안주가 술에 빠졌을 때는 그 술을 버린다.
그 이유는
술은 천(天)이므로 안주에 쏟아진 것은 허물이 되지 않고,
안주는 지(地)이므로
술에 빠진 것은 地(지)가 요동하여 天(천)을 범한 것이므로 버린다.
또 내가 남에게 술을 따르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나에게 술을 따르면,
자기 잔을 쳐다 보지 않고 따르던 술을 따른 후에
자기 잔을 약간 들어 따라 준 사람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한다.
술의 법도는 그 엄하기가 궁중의 법도와도 같으며 그 속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뜻이 있고 힘을 합한다는 뜻이 있다.
물고기는 물과 싸우지 않고 주객은 술과 싸우지않는다.
❣향나무처럼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을 비판 하고
판단 하는 일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힘들 때 포기하는 것이고
가장 어려운 일은 힘들 때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딱 들어맞는 것은
열쇠와 자물쇠밖에 없다
서로 조금씩 맞추며 사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무거운 짐이다.
악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결코 살아서 선을 볼 수 없다
성난 말에 성난 말로 대꾸하지 마라
말다툼은 언제나 두 번째의
성난 말에서 비롯된다
의인 이란 향나무 처럼
자기를 찍는 도끼 에게
향을 뿜는 사람이다.
오늘도 우리는 다양한
많은 인연을 만나지요
어떤 인연이든 서로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가슴 아파하지말고 나누며 살다 가자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mM5r&articleno=2069
? 나이가 들면,
건강한 사람이 가장 부자요,
건강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요
건강한 사람이 가장 성공한 사람이며,
건강한사람이 세상을 가장 잘 살아온 사람입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어100세까지 장수하시길 바랍니다
http://m.cafe.daum.net/gochg/T1U5/1193?list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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