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토요판] 몸 /나의 몸
⑭ 인터섹슈얼 김래연의 몸
▶ 남아공의 여자 육상스타 세메냐 선수 기억나십니까. 2009년 월등한 기량 차이로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 결승에서 우승해 성별 논란이 일었습니다. 세메냐 선수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진 인터섹슈얼(intersexual) 여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인터섹슈얼들이 있지만 이들에 대해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인터섹슈얼 여성인 김래연씨가 어렵게 언론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산부인과 분만실의 공기를 갈랐다. 엄마의 몸속에 있다 막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모든 게 낯설었다. 눈을 감고 우는 게 세상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대화였다.
아이의 몸은 여느 아이와 다를 게 없었다. 페니스(penis·남성의 성기)가 달려 있어 의심의 여지 없이 사내아이였다. "아들입니다." 아이를 받은 분만실의 간호사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에게 말했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엄마는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여느 사내아이처럼 평범하게 자랐다. 사춘기가 찾아왔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여자보다 남자를 보면 가슴이 뛰었다. 여자처럼 화장을 하는 게 좋았다. 변성기가 오지 않았다. 가슴이 자라고 엉덩이가 커지기 시작했다. 남성의 몸에서 여성이 자랐다. 생리 비슷한 것이 반복됐다. 피는 나오지 않았지만 냉이 흘렀다. 엄마는 말했다. "사내들은 원래 운동하면 가슴이 커지는 거야." 아이는 스포츠 브래지어를 차고 가슴을 눌렀다. 항문 쪽에 생기는 변화에 대해서는 '꼬리뼈가 사라진 흔적'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아이는 그 말을 믿었다.
사내아이인데 여성처럼 몸이 변해가자 '고추는 달리긴 한 거냐'며 놀리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탈출구는 공부였다. 악착같이 공부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지 않으면 아이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가 없었다. 아이는 서울의 한 명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2008년 아이는 스물다섯 어른으로 자랐다. 여성과 남성 모두의 특징을 가진 채 그대로 성인이 되었다. 페니스를 갖고 있어 남자였지만 동시에 여성의 가슴과 질을 가진 여성이었다.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내가 트랜스젠더(transgender·성전환자)인가?' 고민 끝에 병원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진료 뒤 뜻밖의 말을 꺼냈다.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인터섹슈얼(intersexual·반음양 사람)인 것 같아요. 제대로 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어요."
놀랍게도 산부인과 검사 결과 그의 몸에 정소와 난소가 모두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다. 질과 음순이 항문 뒤에 숨겨져 있는 것도 발견됐다. 인터섹슈얼 진단을 받았다. 오히려 기뻤다. "충격을 받기보다는 진정한 나를 알게 되어 기뻤어요. 내 몸이 이상했던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니까요."
"수정 과정에서 Y염색체 일부가 섞인 듯"
인터섹슈얼 성정체성을 가진 김래연(가명·30·현재 여성)씨는 성염색체 배열 구조가 XX였다. 남성의 경우 XY의 구조다. 김씨를 진단한 의사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 과정에서 Y염색체의 일부가 섞여 페니스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섹슈얼은 수정된 태아가 자궁 안에서 분화해가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자연스러운 존재다. 염색체 이상으로 이러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단순한 호르몬 과다나 결핍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인터섹슈얼은 어떤 돌연변이이거나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다.
김원회 부산대 의대 명예교수(전 대한성학회 회장)는 "드물게 벌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갖고 태어나는 것 등은) 태아의 분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태생 초기에는 남녀 모두 일차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분화 과정에서 어떤 원인으로든지 이상이 생기면 양성의 상태로 태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자인 줄 알았는데 이상했다
25살때 병원에 찾아갔다
여성의 성기가 발견됐다
그는 정소·난소를 다 가진
인터섹슈얼임을 알게 됐다
페니스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온전한 여성으로 살고 있다
자궁도 있고 생리도 한다
법적 성별전환도 완료했다
문제는 다들 숨어산다는 거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두루 갖춘 사람을 완벽한 이상형으로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를 살펴보면 당시 그리스 사회의 철학을 살펴볼 수 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원래 남자로 태어났는데 열다섯이 된 어느 날 호수의 요정 살마키스에게 유혹당한다. 살마키스는 둘을 영원히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한다. 신이 기도를 받아들여 둘의 육체는 하나가 된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양성을 모두 지닌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 의학계에서 인터섹슈얼을 허마프로다이트(Hermaphrodite)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인터섹스(intersex·간성의 성별)는 진성반음양과 가성반음양으로 나뉜다. 김씨의 경우 진성반음양에 속하는데, 진성반음양은 난소와 정소를 모두 갖고 있어 남성과 여성의 기능을 모두 할 수 있다. 대부분 유전적으로 여성의 성염색체 배열(XX)을 지니지만 일부 소수는 남성의 성염색체 배열(XY)을 갖거나 둘 모두를 지니기도 한다.
따라서 난소와 정소를 각각 동시에 가지고 있거나 어떤 경우에는 난소와 정소 조직이 하나로 합쳐진 난정소를 갖고 있는 진성반음양인도 있다. 별도의 난소와 정소를 각각 가지는 경우 정소가 신체의 오른쪽에 난소는 왼쪽에 존재한다고 한다. 정소를 갖춘 진성반음양인이라 해도 대개 정자를 만들지 못해 아버지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난소가 난자를 생산하는 것은 가능해 어머니가 될 수는 있다.
가성반음양은 한쪽 성의 성선(여성의 난소와 남성의 고환을 이르는 말)만 갖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난소를 갖고 있지만 외부 생식기가 남성에 가까운 경우를 여성가성반음양, 정소를 갖고 있지만 외부 생식기가 여성에 가까우면 남성가성반음양이라 말한다.
"괴물을 낳았다"며 괴로워했던 어머니
김씨는 병원의 진단을 받은 뒤 진성반음양 형태의 인터섹슈얼 성별을 갖고 있다고 부모님께 알렸다. 비록 남성의 성기를 갖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여성이고 여성의 신체적 특징 역시 모두 갖고 있으니 여성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남성의 성기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김씨의 어머니는 "내가 낳지 말았어야 할 괴물을 낳았다"며 괴로워했다.
"그 얘기를 듣고 너무 슬펐어요. 저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성을 바꾸려는 게 아니고 원래 성을 찾아가려는 것인데 부모님은 이해를 하지 못하셨어요."
결국 김씨는 2010년 남성 성기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정소를 떼어냈다. 항문 뒤에 숨어 있던 질을 바깥으로 뺐다. 치사율이 10%에 이르는 위험한 수술이었지만 김씨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인터섹슈얼은 보통 태어나자마자 쉽게 발견된다. 여성과 남성의 성기가 동시에 몸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한쪽 성의 성기가 뒤늦게 발견돼 성인이 된 뒤 인터섹슈얼을 인지하는 것은 극히 드문 사례라고 한다.
엄밀히 말해 인터섹슈얼은 트랜스젠더와는 다르다. 트랜스젠더는 원래의 성별을 바꾸거나 정신적으로 다른 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하지만 인터섹슈얼은 두개의 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두개의 성 중 하나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더라도 이것이 성별을 바꾸는 수술은 아니다.
김씨는 "보통 어린아이일 때 인터섹스 상태가 발견되면 어느 하나의 성을 없애는 수술을 한다. 그래서 평생 자신이 인터섹슈얼인지 모르고 사는 경우도 많다. 성인이 된 뒤 수술을 받더라도 이를 숨기고 살기 때문에 정확하게 인터섹슈얼이 몇명인지 통계를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 논문마다 인터섹슈얼의 존재를 다르게 설정해 인터섹슈얼의 정확한 수를 알 수 없지만 2천~1만명당 1명씩 인터섹슈얼 아기가 태어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끔 부모의 일방적인 수술 결정이 인터섹슈얼로 태어난 아이에게 성정체성 혼란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남성의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아이의 페니스를 제거해버리거나, 여성의 성정체성을 갖고 있는 아이의 여성 생식기를 제거해버리는 수술을 할 때 그렇다. 이 아이들은 성인이 된 뒤 정체성 혼란으로 성 전환 수술을 고민하게 된다.
이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인터섹슈얼 아이가 성정체성을 뚜렷이 자각하는 성인이 된 뒤 스스로 어떤 쪽 성을 선택하는 수술을 할지 결정하도록 하는 게 좋다. 김씨는 "인터섹스 아이가 자라면서 겪게 될 여러 상처들이 있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감행하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고 말했다. 일부 부모들은 출산 전 태아가 인터섹슈얼 상태임을 알게 되면 태아를 지우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최근 출생증명서에 남도 여도 아닌 '제3의 성'을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 인터섹슈얼인 상태로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위한 조처다. 이 덕분에 부모가 너무 조급하게 아이의 성을 확정하는 수술을 결정할 필요 없이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려 수술을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연간 2천명의 신생아가 인터섹슈얼로 태어난다고 알려지고 있다.
페니스 제거 수술을 받은 뒤 김씨는 온전한 여성으로 살고 있다. 자궁도 있고 생리도 정상적으로 한다. 염색체 역시 온전한 여성의 배열을 하고 있고 법적인 성별 전환도 완료했기 때문에 굳이 스스로를 인터섹슈얼 여성이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김씨는 외모와 신체적 특징, 성정체성 모두 여성이다.
이렇게 겉으로는 인터섹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터섹슈얼들은 숨어 산다. 인터섹슈얼끼리 뭉쳐 그들만의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도 없고, 자신들만의 온라인 커뮤니티조차 없다. 김씨는 우리 사회에 숨어 살고 있는 인터섹슈얼 소수자들을 찾고 싶다.
"인터섹슈얼인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려고 알음알음 알게 된 번호로 전화를 해본 적 있어요.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대답을 많이 들었어요. 인터섹슈얼들은 본인이 굳이 얘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것을 알 수 없기에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계속 숨어지내면 없는 것처럼 취급받아요"
김씨는 일부러 인터섹슈얼 여성임을 숨기지 않는다. 물어보지 않는 이들에게 굳이 먼저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당당하게 인터섹슈얼임을 고백한다.
"저 같은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예요. 계속 숨어 지내면 인터섹슈얼은 세상에 없는 것처럼 취급받아요. 세상 어느 곳을 가도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것을 알리고 싶어요." 그는 현재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준비한다. 인터섹슈얼의 사회적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 소녀 캐스터 세메냐는 유명한 인터섹슈얼 선수다. 세계육상선수권 2009년 여자 800m 부문에서 우승하는 등 세계적 스타였지만 다른 여성 선수와 다른 월등한 기량 때문에 남성호르몬 약물 복용을 의심받았다.
언론들은 "세메냐가 난소와 자궁 대신 남성호르몬을 생산하는 고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세메냐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세메냐가 인터섹슈얼 운동선수인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동시에 세메냐가 여성임을 인정해 세메냐는 이후 육상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세메냐 사건은 우리 사회에 인터섹슈얼이 흔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인터섹슈얼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다.
김씨는 평범한 여성으로 사는 것이 꿈이다. 아직 남자친구를 제대로 사귀어보지 못했다. 늘씬하고 키가 큰 김씨의 외모에 반해 고백을 해오는 남성들은 있지만 아직 김씨의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남자들은 있지만 저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아요. 제가 인터섹슈얼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제 스스로를 온전히 설명하고 싶기도 해요."
페니스 제거 수술 이후 오랫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김씨의 어머니는 이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혼자 사는 집에 어머니가 가끔씩 찾아와 김씨를 만나고 돌아간다. 아직 아버지와 동생은 김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인사를 건네도 받지 않는다. 아직 김씨는 가족들에게 투명인간이다.
그러나 김씨는 원망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 우리 사회가 제대로 인터섹슈얼에 대해 논의를 제대로 한 적이 없잖아요. 차라리 우리를 장애인으로 생각해도 좋으니 사람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동성애자들은 변태 취급을 받으면서도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우리는 (자웅동체인) 지렁이 같은 존재로만 취급받아요." 김씨가 가늘고 여린 목소리로 웃었다.
허재현 기자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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